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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땅에도 삶은 계속된다

네팔 카트만두 윤형준 기자 news@van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최종수정 : 2015-05-04 15:27

대지진 8일만에 101세 노인 극적 생환

무너진 땅에도 삶은 이어졌다. 네팔 대지진 9일째인 3일(현지 시각) 오후 카트만두 최대 번화가인 ‘타멜(Thamel)’지역엔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반 파는 상점이 다시 문을 열며 들린 소리다. 형형색색 전통 옷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도 다시 열었다. 지진 이후 한동안 수입이 없었던 상인들은 문전까지 나와 손님을 잡아끌었다. 티셔츠 값이 너무 비싸다는 관광객에게 상인들은 “직접 짠 거다”고 버티다 결국 못 이기는 척 옷을 넘겼다.

도시를 덮친 대(大)재난은 구경거리로 소비됐다. 짐꾼들은 세발자전거와 비슷하게 생긴 ‘릭샤’에 관광객을 태워 무너진 세계문화유산을 찾았다. 짧은 영어로 호객 행위를 하며 “30분에 300루피(약 3000원), 1시간에 500루피. (무너진) 왕궁도 갑니다”라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돌더미로 변해버린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담배를 피우고, 주머니에서 약간의 돈을 꺼내 짐꾼에게 팁으로 건넸다.

대지진으로 카트만두 인근의 세계문화유산 7곳 중 4곳이 처참히 무너졌지만 복구는 더뎠다. 과거 왕궁으로 쓰였고, 지금은 도로원표로 이용되는 ‘네팔의 심장’더르바르광장은 이날까지도 흙더미 상태였다. 보다 못한 행인들이 나서 흙더미 속에서 벽돌을 찾아내 한곳에 쌓고 있었다. 화려했던 왕궁 앞 광장엔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천막을 치고 나앉았다. 네팔의 한 언론인은 현지 언론을 통해 “사원의 나라였던 네팔이 텐트의 나라가 됐다”고 자조했다. 문화유산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에는 최소 10년이 필요하다는 게 네팔 당국의 판단이다. ‘신(神)의 나라’네팔의 관광업은 지진 한 번에 10년 후퇴했다.

번화가 곳곳엔 지진의 상흔(傷痕)이 남았다. 한 음식점은 ‘We are alive(우린 살아 있다)’라는 종이를 문에 붙여 놨다. 관광지 곳곳엔 ‘네팔인을 도와달라’는 피켓을 든 네팔인이 보였다. 이날 타멜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어선(Asun)' 지역 주민들은 3m 높이 건물 잔해에 올라 맨손으로 돌더미를 하나씩 치우고 있었다. 한 주민은 “저 안에 아직 6명의 시신이 남아 있다”고 했다.

기적의 생환(生還)도 이어졌다. AFP는 지진 발생 8일째인 2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0㎞ 떨어진 누와콧 지역에서 올해 101세인 푼추 타망씨가 구조됐다고 3일 밝혔다. 구조대는 무너진 타망씨의 자택 잔해 속에서 경미한 부상만 입은 채 갇혀 있던 타망씨를 발견, 헬리콥터로 인근 병원에 이송했다.

타망씨는 현지 언론에 “일주일 동안 근처에 있던 밀가루와 물통 속 물만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왼쪽 무릎과 왼손에 부상을 입었을 뿐 안정적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타망씨는 20세 때였던 1934년 네팔 대지진도 경험했다. 당시 1만여명이 사망했다. 그는 “이번 지진이 당시 지진보다 강력했다”며 “1934년 지진 때는 우리 마을에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지만 이번에는 많은 주민이 죽었다”고 했다. 한편 구조대는 3일 이번 지진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신두팔촉 지역에서도 잔해에 갇혀 있던 여성 3명을 구해냈다.

이날까지 사망자는 7000여명, 부상자는 1만4000여명으로 집계됐다. 네팔의 유명 트레킹 코스가 있는 라탕 지역에서는 이곳을 찾은 외국인 51명의 시신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산악 지역 수색이 본격화됨에 따라 사망자는 이번 주 중 1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한편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지진으로 발이 묶였던 한국인 산악회 회원 5명은 이날 카트만두로 복귀했다. 이들은 4일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자발적 복구 네팔 지진 발생 8일째인 2일, 네팔 카트만두 박타푸르 펌킨 템플 탑 위에서 네팔 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지진 때문에 무너져 내린 벽돌을 치우고 있다. 현재까지 네팔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7000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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